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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KAL858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 바레인에서 비행기 폭파범 김현희가 검거되었고(공범 김승일은
음독자살), 안기부, 검찰 등의 수사와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에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88올림픽 방해공작으로 판명되었다.
김현희가
대통령선거 하루 전에 국내로 압송되어 오면서, 노태우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군사정권을 불신하던 사람들은 자작극의 의혹을 제기했고,
당시 일부 친북조직에서는 조직적으로 ‘조작설’을 유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대북유화 분위기가
퍼지면서 2001년 전국연합, 범민련 등 친북단체가 주축이 된 ‘통일연대’의 주도하에 민변, 유족회 등이 참가하는 <김현희 칼기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발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 후 현정부의 과거사 파헤치기의 일환으로 올해 초
국가정보원에서 이른바 7대 의혹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고, 이 중 KAL858기 폭파 사건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대책위’의 홈페이지에는 “안기부의 KAL858기 사건 수사발표는 거짓말이었음을 분명히 밝혀내기”에 이르렀다며, 29가지의
수사발표의 거짓과 무려 73가지의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주요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이 사건의 의혹을 제기하는 프로를
방영했는데, 이른바 조작의 새로운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검증되지 않은 ‘의혹설’만 재탕해서 보여준 셈이다.
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수사기록의 착오를 따지거나, 추측을 가공해내는 상상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과연 김현희가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김현희가 검거되고, 김현희 진술의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졌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쟁점1: 김현희는
북한사람인가? KAL기사건이 정권의 자작극이라면, 김현희는 북한이 아닌 남한이나 제 3국에서 태어나 안기부에 고용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발생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한에서 김현희를 안다는 사람이 나타난 적이 없다. 더구나 김현희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하나는 김현희가 72년 11월 2차 남북조절위원회 남측대표들의 평양방문 환영행사에 화동으로 참가했던 사진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화동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는 김현희의 진술에 착안한 前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赤旗)’의 기자였던 하기와라 료는
지난 88년 일본 공산당화보 ‘그래프 안녕하십니까’에 ‘김현희인 듯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남북조절위원회 행사 때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오히려 조작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악재(?)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하기와라 료는 착오로 다른 사람을
김현희로 지목하여(실제 김현희는 그 사진에서는 얼굴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그 사진에 대해 반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같은 행사의 사진을 찍었던 요미우리신문의 미츠이시 히데아키 기자가 김현희의 얼굴이 제대로 찍힌 사진을 찾아낸 것이다.
흥미롭게도 조작을 주장하는 ‘대책위’나 방송사들은 이 새로운 사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착오가 발생한 하기와라 료의
사진을 조작의 증거로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쟁점2: 김현희는 북한의 공작원이었는가? 김현희가 북한에서
공작원으로 발탁되어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는 결정적 증거가 하나 있다. 김현희는 사건당시 일본여권을 가지고 일본인 행세를 했는데, 북한에서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다구치 야에코)의 존재가 명확히 확인 된 것이다.
김현희의 이은혜에 대한 진술을 바탕으로
일본경찰이 수많은 실종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현희의 진술과 일치하는 이은혜를 찾아냈고,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북한공작원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더구나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였던 이은혜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이미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일본의 가족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하튼 이은혜는 김현희의 진술에서 처음 그
존재가 알려진 만큼, 김현희가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김 위원장을 통해 명백히 입증된 셈이다.
쟁점3: 김현희의 체포과정
KAL기사건이 정권의 자작극이라면 사실상 공모관계인 김현희를 비교적 수월하게 한국 수사기관이 검거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공범인 김승일의
음독자살도 납득하기 어렵다. 김승일의 자살은 접어두고, 김현희는 우여곡절 끝에 바레인 당국에 검거된다.
김현희일행은 바그다드에서
KAL858기에 탑승한 뒤 폭탄을 설치하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려, 요르단으로 탈출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인 바레인공항에서 김현희의 여권이
위조여권임이 밝혀져 체포된다.
이 체포과정의 일등공신은 당시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서기관으로 일하던 스나가와 쇼준 씨. KAL기
폭발 직전 아부다비 공항에서 두 명의 일본 여권 소지자가 내렸다는 정보를 얻은 스나가와는 바레인의 한 호텔에 투숙 중인 김현희일행을
찾아냈고(이때는 이들이 일본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 상태), 잠복 끝에 이들이 타국으로 탈출하려는 순간 공항 출입국담당자를 설득해 이들을
붙잡아 두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근 당시 김현희를 가장 먼저 접촉했던 스나가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책위’측이 김현희의
음독시도를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며 “두 사람의 생사가 갈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승일은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즉사했고 김현희는
감시원이 캡슐을 쳐내는 바람에 조금만 먹었기 때문이지요. 음독 직후 두 사람이 경련하는 모습은 절대 꾸며낼 수 없는
형상이었습니다.”
한국 정보기관 개입설에 대해 그는 “거짓말을 많이 한 역대 독재정권을 한국민이 불신하는 것은 이해하나 당시 조사
경험으로 봐서 이 사건은 100% (자작극이) 아니다”고 말했다.
쟁점4: 한국정부기관이 방치했을 가능성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이고 북한당국의 지시에 의해 KAL858기를 폭파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안기부가 대선에 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를 방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현희일행의 사건 이전의 일부행적이 사진으로 기록되는 등 요주의 대상으로 추적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기부나 미 정보기관에서 김현희일행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그들이 항공기 폭파와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을 미리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다.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었던 체포과정을 보더라도, 이런 의혹은 근거를 갖기 어렵다.
KLA기 폭파는
국제적 사건이었다. 김현희의 체포과정도 일본, 바레인 등이 직접 개입했고, 여객기 잔해 수색에는 태국이 관여하여 태국 해안에서의 잔해 발견을
태국 내무부가 발표하였다. 아울러 이 사건으로 미국정부는 1988년 1월 21일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 비자발급 규제를 강화하였다.
일본정부도 1988년 1월 26일 제3국에서의 북한외교관 접촉을 제한하고 일-북한간 특별기의 일본 기항을 중지하는 등 대북한
제재조치를 단행하였다. KAL기 사건이 북한당국에 의한 테러라는 명백한 확신이 없이, 다른 나라들이 매우 중대한 외교조치인 대북제재를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쟁점5: 대선 전날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온 의혹 김현희에 대한 의혹은 사건이 대선 직전에 발생해 대선
전날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왔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로인해 자작극, 방치설 등이 나오게 되었고, 일본의 조총련, 한국의 친북운동권 등 북한정권을
비호하려는 세력들이 논리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이어졌다.
김현희를 대선 전날 서울로 데려온 것은 대선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정권의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는 거짓말을 포함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의 풍토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다만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결과를 이용한 것과 아예 사건 자체를 만들어 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대책위’의 홈페이지에는
“KAL기 사건으로 인한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규정문제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있다며, 진상규명 운동이
북한정권의 명예회복에 목적이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집단이 진상규명에 개입되어
있어, 과연 이들이 진실에 접근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국정원의 이 사건 진상조사에는 조작설에 근거해 소설을
쓴 저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 저자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 또한 ‘대책위’에 가입되어 있다.
무려 115명의 목숨을 흔적도 없이
앗아간 테러사건인 만큼 의혹이 있다면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러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주장이나, 주관적 가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과 증거에 의존해야 한다. 진실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진상규명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www.new-right.com)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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