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오피니언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횡설수설/조종엽]
입력 2024-01-29 23:51업데이트 2024-01-30 09:05
최근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는 제목의 한국 관련 유튜브 영상이 화제다. 미국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2016년)의 저자 마크 맨슨이 여행기 형식으로 한국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정신건강 문제 등을 짚은 영상이다. 착점이 흥미롭다. 영상 도입부는 아파트 이층 침대에서 합숙했던 과거 스타크래프트 게임 프로팀의 집중 훈련을 소개한다. 한국의 케이팝 스타나 운동 선수, 첨단 기술도 이 같은 경쟁 압박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성공했다는 것. 하지만 ‘100점이 아니면 0점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도태되는 이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영상은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와 돈벌이를 강조하면서도 개인주의와 자기표현은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한국인이 물신을 숭배해서 그런 게 아니다. 양극화한 노동 시장이 고착돼 모두가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달려야 하는 탓이다. 선점한 이들만 ‘지대(地代)의 이익’을 누리다 보니 영상 속 전문가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항상 실패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일부 대목은 다소 피상적인 느낌도 든다. 영상은 ‘유교적 수치심(shame)과 (타인에 대한) 비판(judgement) 문화’가 문제라고 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남의 평판을 의식하는 걸 중시하는 건 그나마 물질주의가 한국을 모두 좀먹는 것을 막는 방패다. 오히려 미국에서 대낮에 마약에 찌든 이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현실은 극단적 개인주의의 해독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이 가족을 중심에 놓고 사는 것이 문제’라고 짚은 건 앞뒤 맥락을 더 살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적 발전을 하며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가족에게 지워 왔다. 가족 안에서 특히 여성이 양육을 하며 미래 노동력을 키웠고, 살림을 하며 현재의 노동력을 재생산했고, 노인을 부양하며 과거의 노동력을 책임졌다. 하지만 과거 한국 사회는 이를 무시했다. 노동력이 스타크래프트의 SCV(일꾼)처럼 마우스를 클릭하면 만들어지는 셈 쳤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는 구조가 해체되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인 미국도 우리보다 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인종 마약 이민 범죄 총기 등 많은 사회문제를 갖고 있다. 우울증 유병률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말은 충격 요법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제작자 맨슨의 격려 섞인 믿음처럼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관용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삶이 각자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개성적으로 살아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패자가 부활할 수 있게 안전망도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鶴山: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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